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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구원하시는 하나님’ (요 1:17~2:10)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피해서 다시스로 도망쳤지만, 여호와께서는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셔서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쌓아 놓은 재물의 성, 세상 물건과 탐날만한 의식주 문제로 인생의 요새 같은 성들을 쌓음으로 하나님의 음성과는 다른 곳으로 도망치곤 합니다. 세상 욕심을 따라가는 것이 무섭고 심각한 이유는 그것이 결국 하나님과 그 말씀과 예배를 피해 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은 전쟁에서 허락되지 않았던, 아각을 살려두고 좋은 물건을 자기 것으로 취하는 행동을 함으로써 하나님과 그 말씀을 뒤로 했습니다. 불순종은 곧이어 하나님을 고민하시게 만들며, 그에 따라 주님은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셔서 요나를 삼키게 하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물고기 뱃속은 요나가 자기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 앞에 다시 서는 깊은 영적 골방이었습니다. 밤낮 삼일동안 요나는 캄캄한 어둠 속에 있었습니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고, 어디로도 도망할 수 없는 자리에서 그는 비로소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곡히 기도합니다. 요나는 자신이 스올의 뱃속에 있었다고 말하는데 이는 죽음에 가까운 절망을 뜻합니다. 숨이 막히고, 길이 끊기고, 도움을 요청할 수도 없으며, 생명의 가능성이 사라진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요나의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요나는 자신을 바다 가운데 던지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합니다. 큰 물과 파도와 물결이 자신을 덮었을 때, 그는 거기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습니다. 버림받은 것 같은 자리에서도 그는 하나님을 향한 시선을 완전히 놓지 않았습니다. 물이 영혼까지 둘렀고, 깊음이 그를 에워쌌으며, 바다 풀이 머리를 감쌌습니다. 아직 물고기 뱃속에 있었지만, 그는 이미 하나님의 구원을 믿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영혼이 피곤할 때, 그는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 신앙은 인생의 일이 잘 되고 원하는 대로 될 때보다는, 오히려 지치고 무너지고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때, 거기서 하나님을 기억하게 됩니다. 요나의 기도는 깊은 바다 밑에서 드려졌지만, 하나님의 성전에 이르는 기도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인생의 막다른 깊은 곳에서 우리의 간절한 마음과 기도를 받으십니다. 요나는, 헛된 우상을 따르는 자는 하나님의 은혜를 버리는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즉 하나님을 떠난 길은 자유가 아니라 은혜를 상실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길은 자기가 잘 되는 것 같고 자기의 원초적인 욕심을 채워가는 것 같지만, 주의 일은 진척되지 않고 가정은 붕괴되며 죄악은 쌓여가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돌이켜 하나님께 감사의 목소리로 제사하겠다고 고백하고, 서원을 갚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음을 선포합니다. 구원은 인간의 능력이나 조건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마침내 여호와께서 물고기에게 말씀하시자, 물고기는 요나를 육지에 토해냅니다. 요나를 삼킨 것도 하나님의 섭리였고, 다시 내보낸 것도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성도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때로는 불순종 때문에 깊은 절망과 수렁의 자리로 내려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하나님을 기억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고난은 돌이킴의 자리이며 새로운 기회의 시간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다시 살리기 위해 깨우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어둠 속에서도 주의 성전을 바라보고, 절망 속에서도 기도를 멈추지 않으며, 마침내 구원이 여호와께 속해있다는 믿음으로 다시 순종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한 해의 남은 절반도, 주의 은혜 속에 들려오는 하나님의 귀한 음성 속에서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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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08
  • [강대형 목사의 로마서 칼럼] ⑫ 죄와 사망을 이긴 은혜와 생명 (롬 5:12~21)
    인간은 왜 죄를 짓고, 왜 고통을 겪으며,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 근본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셨을까요? 로마서 5장 12절부터 21절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가장 분명한 답을 들려주는 말씀입니다. 신앙생활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리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은혜로운 감동과 신앙의 체험도 소중하지만, 진리 위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면 신앙은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리를 바로 알 때 우리는 사탄의 거짓을 분별하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인간의 모든 문제의 시작을 한 사람에게서 찾습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롬 5:12) 그 한 사람이 바로 첫 사람 아담입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 결과 사망이 인류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왜 아담의 죄가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가"라는 질문을 하십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이 결코 홀로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존재라고 말씀합니다. 몇 해 전 전 세계를 뒤덮었던 코로나19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한 지역에서 시작된 바이러스가 불과 몇 주 만에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죄도 이와 같습니다. 인류의 대표인 아담에게 들어온 죄는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미쳤고, 결국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의 선택이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대표성의 원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의 진단은 과연 우리의 현실과도 일치할까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선한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죄성을 품고 살아갑니다. 평소에는 드러나지 않던 이기심과 욕망이 자신의 이익이 걸린 순간 모습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본성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죄성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 율법이라고 말씀합니다.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롬 5:20) 이 말씀은 율법이 죄를 만든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미 인간 안에 존재하는 죄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는 의미입니다. 사랑하라는 말씀 앞에서 사랑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용서하라는 말씀 앞에서 용서하지 못하는 자신의 연약함을 보게 됩니다. 율법은 우리의 죄를 드러내는 거울이며, 동시에 우리 힘으로는 결코 의로워질 수 없음을 깨닫게 합니다. 성경이 말하는 사망은 단순히 육체의 죽음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과의 생명이 끊어진 인간은 참된 만족과 평안을 잃어버리고, 허무와 두려움, 상처와 절망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죄가 가져온 가장 근본적인 결과입니다. 그러나 로마서는 인간의 절망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사망을 해결하시기 위해 또 한 분의 대표를 보내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롬 5:15) 첫 사람 아담이 죄와 사망을 가져왔다면,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은혜와 생명을 가져오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완전히 깨뜨리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어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노릇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은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리로다."(롬 5:17) 이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더 이상 죄와 사망의 지배 아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제는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는 사람입니다. 죄가 우리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를 다스립니다. 사탄은 여전히 우리의 실패와 상처를 들추며 정죄하려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자신의 경험이나 감정보다 하나님의 진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는 아담의 실패보다 크고,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어떤 죄보다도 크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율법적인 노력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성령의 생명으로 충만해져야 합니다. 자신의 힘으로 죄를 이기려 하기보다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 은혜를 구할 때,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죄를 이기는 능력을 나타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우리의 실패가 아닙니다. 아담의 실패보다 크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입니다.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우리의 죄가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이며, 우리의 연약함이 아니라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의 생명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죄와 사망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아닙니다.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오늘도 이 복음의 진리를 굳게 붙드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의 모든 죄보다 크고, 부활의 생명이 우리의 모든 실패와 절망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그 진리 위에 굳게 설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와 사망을 이기는 승리의 삶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수지선한목자교회는? 수지선한목자교회(담임목사 강대형)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위치한 신앙 공동체로, ‘오직 복음’과 ‘성령의 임재’를 사역의 핵심 가치로 삼고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선포:관념적인 종교를 넘어 삶의 실제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십자가의 복음을 선포합니다. 죄 사함의 확신과 부활의 소망 안에서 성도들이 구원의 기쁨을 누리도록 돕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는 예배: 성령의 강력한 운행하심을 구하며, 치유와 회복, 돌파가 일어나는 뜨거운 예배를 지향합니다. 특히 매주 금요일 ‘거룩한 불꽃 집회’를 통해 영적 갱신과 기도의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와 교육 사역: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자녀들이 말씀 위에 바로 설 수 있도록 체계적인 신앙 교육을 실시하며, 세상을 변화시킬 다니엘과 같은 영적 리더들을 양성하는 데 주력합니다. 치유와 상담 (HMSS): 내적 치유와 상담 프로그램을 통해 현대인들의 마음의 상처를 보듬고, 복음 안에서 온전한 인격적 회복을 경험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사역을 펼치고 있습니다. 수지선한목자교회는 모든 성도가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내며, 지역사회와 열방을 향해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건강한 선교적 공동체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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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7-05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세상의 소금’(마 5:13)
    구약성경을 보면, 소금은 여러 가지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성전 제사 때 사용되었습니다.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레 2:13)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는 것은 영원히 변함없는 하나님의 소금 언약을 의미합니다. 영원한 언약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거제로 드리는 모든 생물은 내가 영구한 몫의 음식으로 너와 네 자녀에게 주노니 이는 여호와 앞에 너와 네 후손에게 영원한 소금 언약이니라.”(민 18:19) 소금으로 맺은 언약은 영원성과 불변성을 강조합니다. 저주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아비멜렉이 그 날 종일토록 그 성을 쳐서 마침내는 점령하고 거기 있는 백성을 죽이며 그 성을 헐고 소금을 뿌리니라.”(삿 9:45) 아비멜렉이 소금을 뿌린 것은 소금밭처럼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황폐한 성읍이 되라는 상징적 행위였습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장차 모압은 소돔 같으며 암몬 자손은 고모라 같을 것이라 찔레가 나며 소금 구덩이가 되어 영원히 황폐하리니 내 백성의 남은 자들이 그들을 노략하며 나의 남은 백성이 그것을 기업으로 얻을 것이라.”(습 2: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정결하게 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그 성읍 사람들이 엘리사에게 말하되 우리 주인께서 보시는 바와 같이 이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나쁘므로 토산이 익지 못하고 떨어지나이다 엘리사가 이르되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내게로 가져오라 하매 곧 가져온지라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셨느니라 하니 그 물이 엘리사가 한 말과 같이 고쳐져서 오늘에 이르렀더라.”(왕하 2:19-22) 소금은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상징합니다. 본문을 보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금은 맛도 가지고 있지만, 다른 재료들이 맛을 잃을 때 맛을 내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나 소금 자체가 맛을 잃으면 회복될 가능성이 없습니다. 소금은 비료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짠맛을 잃은 소금은 비료로도 사용될 수 없습니다. 결국 쓸모없게 되는 것이지요. 소금이 그 맛을 잃는 것은 녹아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상에 녹아들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너희는 세상에 속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가려 뽑아냈으므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는 것이다.”(요 15:19b)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속한 자로 살지 않기 때문에 박해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소금이 그 맛을 잃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선한 행실로 세상에 녹아들면서 살려야 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엡 2:10)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동행하는 많은 무리에게 “누구든지 내게로 오는 사람은,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식이나, 형제나 자매뿐만 아니라,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눅 14:26-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려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마 6:33) 예수께서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실 때 그들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따랐습니다. “그들이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눅 5:11)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버릴 것은 재물뿐 아니라 가족과 목숨까지 포함됩니다. 부모와 처자와 형제자매와 자기 목숨까지 미워한다는 것은 혈연관계의 편안함에 머물러 있지 말고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내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자신이 버릴 것에 대한 생각 없이 주님을 따르는 것은 맛을 잃은 소금과 같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습니다. 끝까지 주님을 따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의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상에 녹아들고 있는지요? 그래서 세상의 소금으로서 이웃을 돌아보며 옳고 바른 길로 가고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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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29
  • [강대형 목사의 로마서 칼럼] ⑪ 구원받은 자는 고난 중에도 즐거워한다 (롬 5: 3~4)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말씀은 단순히 귀로 듣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여질 때 능력이 됩니다. 믿음으로 열린 심령에는 말씀이 깊이 스며들어 생명이 되지만, 마음이 닫혀 있으면 아무리 귀한 말씀도 겉돌 뿐입니다. 예전에 결혼을 준비하면서 메이크업을 해주시던 분이 "화장이 정말 잘 먹는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화장이 피부에 자연스럽게 스며들 듯이 하나님의 말씀도 믿음이 있는 심령에는 깊이 스며듭니다. 반대로 믿음이 없으면 말씀이 들어오지 못하고 튕겨 나갑니다. 예수님께서도 동일한 말씀을 전하셨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 말씀으로 살아났고, 어떤 사람들은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결국 말씀이 역사하는 통로는 믿음입니다. 로마서 5장은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성도에게 허락하신 놀라운 은혜를 보여주는 장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우리의 경험이나 상식만으로는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께서 그 말씀을 우리 안에 계시하시고, 감추어진 은혜를 열어 주십니다. 우리는 죄를 회개하라는 말씀은 비교적 쉽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분과 영적인 축복, 그리고 구원의 풍성한 은혜는 오히려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먼저 구원받은 성도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설명합니다. 로마서 5장에는 반복해서 등장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바로 '화목'입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씀이 계속 이어집니다. 성경은 중요한 진리를 반복합니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은 단순히 죄를 용서받았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자체가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셨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사람의 새로운 정체성입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여전히 과거의 모습으로 자신을 규정합니다. 실패했던 경험, 상처받았던 기억, 가난했던 환경, 학벌이나 직장, 혹은 사람들의 평가가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르게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여기서 말하는 구원은 낡은 건물을 보수하는 재건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썩어버린 옛사람을 조금 고쳐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십자가에서 완전히 끝내시고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창조하셨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고 새것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거듭남입니다. 존재 자체가 바뀐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실패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내 백성이다. 내 군대다"라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끝까지 "우리는 메뚜기와 같다", "우리는 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정체성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에 약속의 땅도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결국 믿음은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저 역시 이 진리를 깨닫기 전에는 어린 시절의 환경과 상처 속에서 제 자신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강대형, 너의 존재 가치는 부모에게 있는 것도 아니고 환경에 있는 것도 아니다. 너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을 주고 산 나의 자녀다." 그 말씀이 제 마음을 자유롭게 만들었습니다. 환경은 변하지 않았지만 제 안의 해석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진리가 사람을 자유롭게 한다는 말씀이 실제가 되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더 이상 세상이 규정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마치 평생 노숙자로 살던 사람이 어느 날 대기업 회장의 양자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전히 길바닥에서 잠을 자고, 식탁 밑에서 밥을 먹으며 자신을 거지라고 생각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새로운 신분을 얻었다면 그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에 걸맞게 살아가야 합니다. 이처럼 정체성이 분명해질 때 비로소 오늘 본문이 이해됩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세상은 환난을 실패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다르게 해석합니다. 환난은 인내를 만들고, 인내는 연단을 이루며, 연단은 소망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고난을 헛되게 사용하지 않으십니다. 모든 환난 속에서 믿음을 성숙하게 하시고 인격을 빚으시며 마침내 영원한 소망을 더욱 선명하게 바라보게 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다윗도, 요셉도, 야곱도 모두 연단의 시간을 지나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를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고난 가운데 더욱 빚어 가십니다. 그래서 성도는 고난을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즐거워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어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한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가장 확실한 사랑의 증거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우리 안에 보내셔서 자신의 사랑을 부어 주셨고, 무엇보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그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경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며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합니다. 저는 큰아들이 선교를 준비하는 과정을 보며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마음을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재정을 마련하도록 훈련시키면서도 아내와 저는 마음속으로 이미 결정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까지 부족하면 부모가 채워주자고 말입니다. 육신의 부모도 자녀를 끝까지 책임지려 하는데, 하물며 독생자까지 내어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지 않으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환난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의 삶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습니다. 지금의 고난도 인내를 이루고, 연단을 이루며, 마침내 영원한 소망으로 우리를 인도하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는 환난 속에서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십자가를 붙들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 위에 굳게 서십시오. 그 믿음이 우리를 끝까지 붙드시고, 영원한 소망 가운데 승리하는 삶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수지선한목자교회는? 수지선한목자교회(담임목사 강대형)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위치한 신앙 공동체로, ‘오직 복음’과 ‘성령의 임재’를 사역의 핵심 가치로 삼고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선포:관념적인 종교를 넘어 삶의 실제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십자가의 복음을 선포합니다. 죄 사함의 확신과 부활의 소망 안에서 성도들이 구원의 기쁨을 누리도록 돕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는 예배:성령의 강력한 운행하심을 구하며, 치유와 회복, 돌파가 일어나는 뜨거운 예배를 지향합니다. 특히 매주 금요일 ‘거룩한 불꽃 집회’를 통해 영적 갱신과 기도의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와 교육 사역: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자녀들이 말씀 위에 바로 설 수 있도록 체계적인 신앙 교육을 실시하며, 세상을 변화시킬 다니엘과 같은 영적 리더들을 양성하는 데 주력합니다. 치유와 상담 (HMSS):내적 치유와 상담 프로그램을 통해 현대인들의 마음의 상처를 보듬고, 복음 안에서 온전한 인격적 회복을 경험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사역을 펼치고 있습니다. 수지선한목자교회는 모든 성도가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내며, 지역사회와 열방을 향해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건강한 선교적 공동체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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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2026-06-28
  • [국제교회논평회 칼럼] 박조준 목사의 ‘6.25와 대한민국’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 저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고 북한에 살고 있었습니다. 북한에서는 중학생 때부터 인민군 현역 장교가 파견되어 학생들에게 군사훈련을 시켰습니다.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군사훈련을 시켜 남한을 차지하려는 야욕을 품고, 김일성은 이미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표현대로라면, 미 제국주의자들에게 노예로 살고 있는 남한의 인민들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더구나 북한 공산당에게 '인민의 원수'는 바로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기독교에 대한 핍박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제가 중학생 때만 하더라도 주일에 교회에 다녀오면 으레 반 학생들 앞에서 자아비판을 시켰습니다. 당시 선생이 교회에 다녀온 학생에게 묻던 말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성경에는 예수가 겉옷을 달라 하면 속옷까지 주고, 오른뺨을 치면 왼뺨까지 내주라며? 아니, 그러면 미국 놈들이 남조선을 먹었는데 너희는 저놈들에게 북조선까지 내주어야 한단 말이냐?" 교회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했습니까? 꼭 주일에 소위 '노력동원'이라고 해서 주일 예배 시간에 사람들을 소집했습니다. 예배 때문에 나가지 않으면 노동당원들이 교회에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목사가 국가 시책에 반대해서 교인들이 동원되지 않았다며, 교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목사님을 구타하고 구둣발로 밟으며 갖은 모욕을 주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북한에서는 더 이상 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하기가 어려워졌고, 예배당 건물은 군수품을 보관하는 창고로 사용되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대신 이불을 뒤집어쓴 채 "환난과 핍박 중에도 성도는 신앙 지켰네, 우리도 고난받으면 죽어도 영광되도다"라며 눈물 흘리며 찬송을 불렀고, 이불 속에서 라디오로 남한 방송을 들으며 위로받던 기억이 납니다. 1950년 6월 25일, 그들은 남조선이 북조선을 침략해서 전쟁을 수행할 수밖에 없다고 선전하며 기습적으로 남침을 단행했습니다. 훈련받던 어린 학생들까지 징집하는 상황에서, 저는 징집을 피하기 위해 굴속에 숨어 몇 달을 지내기도 했습니다. 반면, 준비 없이 전쟁을 맞은 남한의 국군은 맥없이 밀려 서울을 비롯해 대전, 광주 등을 빼앗기고, 결국 부산 일대를 제외한 남한의 거의 모든 지역이 공산군에 의해 점령당할 위기에 직면했었습니다. 바로 이때입니다. 미 국무장관이었던 존 포스터 덜레스(John Foster Dulles)가 6·25 전쟁 전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교회에서 예배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는 UN에서 "저 한국의 신앙인들을 지켜주어야 한다"고 호소했고, 이에 UN이 연합군을 파병하기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혈맹인 미국을 위시하여 세계 자유 진영의 수많은 젊은이들이 한국을 위기에서 건지기 위해 피를 흘렸습니다. 퇴역했던 맥아더 장군은 트루먼 대통령의 특별기용으로 복귀하여 일반 군사 전략으로는 상상도 못 할 놀라운 작전을 펼쳤는데, 그것이 바로 인천상륙작전입니다. 이 작전으로 북한 인민군을 당황하게 하였고, UN군의 도움으로 북진을 거듭해 평양까지 올라갔지만, 중공군이 인해전술을 쓰는 바람에 다시 밀려 내려와 오늘의 휴전선을 이루게 되었고, 그렇게 대한민국이 오늘날까지 존속하게 된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고 우방국들에게 큰 빚을 진 나라입니다. 절대로, 절대로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미국과의 혈맹 관계는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받은 도움을 생각하면 눈물이 날 정도로 감사한 일이며, 우리는 저들이 흘린 피와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일각에서는 미군이 한국의 점령군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이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결코 할 수 없는 말입니다. 개인이든 민족이든 은혜를 입었으면 그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배은망덕한 개인이나 민족이 잘되는 것을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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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2026-06-25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박준형 목사의 ‘다시 복음으로’ (고전 15:1~11)
    본문은 성도들에게 복음 위에 굳게 서서 지낼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새롭거나 특별한 어떤 사상을 전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전했고 그들이 이미 받았으며 그 안에 서 있는 복음을 다시 분명히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습니다. 신앙은 감정이나 종교적 열심이 아니며,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라는 역사적 복음 위에 세워집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가 잘 알 듯이 우리 인간의 죄 때문입니다.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복음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 지식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장사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은혜의 소식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물론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자신을 우리 죄인들에게 주셨습니다. 부활은 죽음과 죄의 권세가 무너졌음을 나타내는 하나님의 승리 선언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란, 죄인을 구원하고 사람을 새롭게 세우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1절) 진리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받은 그 복음을 “굳게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복음을 지킨다는 것은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을 깨닫고 그 안에 동참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부활의 증인들로 예수님과 게바와 열 두 제자와 오백여 형제들을 차례로 말합니다. 이는 부활이 실제 사건임을 보여 줍니다. 즉 예수님의 복음은 역사 속에 뿌리내린 하나님의 사건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믿음은 허공에 떠 있는 믿음이 아니라,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분명한 터 위에 서 있습니다. 성경에는 그 과거만 보면 몹시 부끄러운 사람들, 실패한 사람들, 자격이 없는 사람들, 은혜를 받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바울은 자신이야말로 진실로 그러한 사람이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자”라고 말합니다. 그는 과거에 예수님과 교회를 박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인생을 바꾸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모습이 지금의 바울이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했습니다. 더욱 중요한 부분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과거를 진정으로 부끄러워하고 죄를 고백하며 회개했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바울이 아무리 놀라울 정도로 변화되고 회개했다 할지라도, 성경을 읽는 본인이 그러한 과정을 거치지 못했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믿음과 감회도 이와 같습니다. 과거에는 죄와 무지와 자기 의에 붙들렸었거나 사탄의 조종을 받으면서 살아왔지만, 이제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살게 된 것입니다. 과거에는 일락과 정욕을 위해 사는 것이 중요했으나, 이제는 하나님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며 사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과거에는 자신의 공로와 칭찬받는 것에 집착했지만, 이제는 십자가의 은혜를 붙들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부끄러운 양심과 그런 삶으로 뒤섞여 있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힘을 얻고 그런 삶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들이 복음을 받은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다시 제대로 붙들어야 합니다. 신앙의 중심에, 편향된 자신의 감정이나 형편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자리 잡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과거의 죄와 실패에 매이지 말아야 하며, 받은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 참된 예배와 섬김과 사랑과 전도 가운데 은혜에 합당한 열매 맺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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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2026-06-23
  • [특별기고] 정일웅 목사의 ‘박조준 목사님의 개혁 정신을 계승하자!’(암5:24, 눅17:10)
    본고는 지난 22일, CTS 아트홀에서 열린 박조준 목사 평전 “신앙과 자유의 파수꾼, 박조준” 출판감사예배에서 전한 정일웅 목사(국제독립교회연합회 총회장)의 설교문 전문이다. <편집자 주> 존경하는 한국교회 복음의 동역자 여러분, 이 시간 우리는 한국교회 목양의 대 스승이신 박조준 목사님을 모시고, 그분이 평생 하나님 나라와 한국교회의 복음 전파를 위하여 헌신하신 일생을 “신앙과 자유의 파수꾼, 박조준”이란 평전에 담아 그것을 증정하는 감사 예배에 초대되었습니다. 귀중한 시간을 내어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에게 “국제독립교회연합회”를 대표하여 진심으로 환영과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사실 이전에 박조준 목사님 존함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박 목사님의 평전을 준비하여 증정하는 감사 예배에 설교자로 섬기게 되리라는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습니다. 예상치 못한 일을 항상 경험하며 사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 같습니다. 제가 박조준 목사님을 가까이서 뵙고 교제하게 된 것은 30년간 총신대학의 교수 사역을 끝내고 은퇴한 후, 2014년 봄, 국제독립교회연합회의 현 사무총장이신 임우성 목사님을 사귀면서였습니다. 이제는 독립교회연합회 일원으로, 박조준 목사님과 함께 한국교회를 섬기게 된 것은 또 하나의 큰 은혜로 여기게 됩니다. 그러다가 박조준 목사님이 살아오신 생애와 목양 사역에 관한 일들을 자세히 살피는 기회가 있었는데, 지난 22-23년 웨이크 신학 포럼1.2회가 개최되면서, 그 포럼에서 두 번의 논문을 발표하면서였습니다. 실은 오늘 증정되는 이 평전 준비도 그 일에서 연유되었습니다. 저는 박 목사님의 생애를 살피는 가운데 많은 것들을 새롭게 알게 되었고, 큰 도전을 받으면서, 박조준 목사님이야말로 한국교회 역사에서 흔치 않은 목양 사역의 대 스승을 발견하였습니다. 물론 이러한 평전 집필에는 웨이크 신학원 구약 교수이신 김열 목사님도 함께했는데, 그간 출판된 박조준 목사님의 설교집들을 분석하여 특히 예언자적 설교의 대가요, 진리의 파수꾼이심을 입증하는 부분에서였습니다. 그분은 백내장 수술로 인한 어려움도 있었지만, 끝까지 함께해 주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존경하는 박조준 목사님, 그리고 평생을 함께하신 우리 사모님, 부족한 저희가 집필한 이 평전이 그리 흡족지 못해도 기꺼이 받아주시기를 소원합니다. 여러분! 저의 서론이 좀 길었지요, 이제 본론으로 가겠습니다. “신앙과 자유의 파수꾼, 박조준”이란 평전을 마무리하면서, 결론 부분에서 목양 사역의 스승이요, 설교의 대가이신 박 목사님이 보여주신 정신, 즉 우리와 한국교회 다음 세대 지도자들이 이어갔으면 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질문하였고, 저는 7가지를 대답해 보았습니다. 제약된 이 시간 그것들을 다 말씀드릴 수는 없으며, 그 가운데서 가장 대표적인 정신 한 가지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바로 박조준 목사님의 개혁에 관한 의지와 정신입니다. 그 정신은 오늘 우리와 한국교회 다음 세대 지도자들이 꼭 계승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생각하면 박 목사님의 개혁 정신은 16세기 유럽의 종교 개혁자 루터와 칼빈이 보여준 정신이며, 거슬러 올라가면, 15세기 초엽 보헤미아의 교회 개혁자 얀 후스의 정신과도 일치하며, 그의 후예들이던 형제연합교회(Unitas fratrum)와 17세기 보헤미아-모라비아 출신으로 교육과 정치와 교회개혁에 관한 큰 울림을 오늘날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미치고 있는 코메니우스의 범개혁 정신과도 일치한다고 봅니다. 그것은 성경 말씀, 즉 진리에 순종이며,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복음의 진리를 따라 신 형상이 온전히 회복된 신앙 실천의 삶, 바로 그것입니다. 이러한 개혁의 정신을 간직한 박조준 목사님은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그 정신을 계승해 가도록 오늘날까지 우리를 깨우쳐 주고 계셨습니다. 되돌아보면, 박 목사님은 그 일을 벌써 평생 3곳 교회들의 목양 사역에서 실천하였으며, 그 결과는 3곳 교회들 모두의 대 성장과 대부흥이었습니다. 그리고 박 목사님의 이러한 목양에 대한 평가는 오늘날 예언자적 설교의 대가로, 목양 사역의 대 스승으로 명명하였으며, 한국교회의 신학자들 역시 박조준 목사님을 성언운반일념의 설교자로, 예수 닮은 목회자로, 한국교회 개혁의 선구자로 평가해 놓기도 했습니다. 되돌아보면, 박조준 목사님은 지난 70년대 중엽에서 80년대 중엽까지 영락교회를 시무하시던 12년간은 신앙과 자유의 파수꾼으로서, 그리고 예언자적 설교의 대가로서 가장 크게 쓰임 받던 절정기였습니다. 그리고 교회개혁 정신도 그곳 교회의 목양 경험에서 무르익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하필이면 그 기간이 국가 사회적으로는 군부독재 통치와 소위 신군부 세력이 통치한 기간과도 맞물려 박 목사님의 예언자적인 설교는 더 큰 빛을 발휘하였습니다.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라고 외쳤던 아모스 선지자처럼, 박 목사님의 설교는 우리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정의 실현의 책임에 눈뜨게 해 주었으며, 복음의 사회정의 실천을 위한 한국 사회의 양심적 대변자 역할까지도 감당했던 것입니다. 박 목사님은 실로 불의한 정치권력과는 결단코 타협하지 않는 진리의 파수꾼이요, 강인한 선지자의 모습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누명도 쓰고 억울하게 감옥에도 가고, 마침내 영락교회를 사임해야만 하는 혹독한 시련과 연단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진리의 파수꾼 역할과 교회개혁의 정신이 박조준 목사에게서 더욱 실현되도록 놀라운 기회를 주셨는데, 그것이 3번째 목양지 갈보리 교회의 설립이었습니다. 18년간 진행된 사역에서 목사님은 그간 한국장로교회 안에 관례화되어 매우 불의해진 장로의 교권 정치를 바로잡으려고 제도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그것은 초대교회 사도들이 제정한 집사 제도 도입을 통한 교회 운영 방식의 개선이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개혁은 한국장로교회에는 큰 충격이었고, 목사님의 개혁 의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장로님들에게서는 혹독한 비난과 비판이 따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개혁의 근본 의도는 목사가 물질에 지나친 관심으로 유혹받아 타락하는 모습을 방지하고, 오직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 전무하여, 목사에게 부여된 주님의 종으로서의 사명을 성실히 감당케 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그것은 행6:4에 명시된 사도 직분의 섬김 정신을 그대로 실현하려 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박조준 목사님이 보여준 개혁의 정신이었습니다. 그리고 갈보리교회의 개혁은 참으로 성공적이었습니다. 생각하면 박조준 목사님의 개혁 정신은 언제나 옳았으며, 오늘날 우리와 한국교회 다음 세대가 계승해 가야 할 개혁 정신이 분명하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박조준 목사님의 개혁 정신은 갈보리교회 사역을 명에롭게 은퇴함으로써 마무리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박 목사님은 은퇴 후에 바로 그 개혁의 정신을 후배 목회자들에게 깨우치려고 한국교회와 전 세계교회 앞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특히 “목사가 바로 서야 교회가 바로 서며, 교회가 바로 서야 나라도 바로 선다”는 대명제를 내세워 “세계 지도력개발원”을 설립하여 목회자 깨우기 의식 개혁운동을 전 세계적으로 전개하였습니다. 지난 10여 년 동안 저 미국 교포교회와 남미 지역에서 가톨릭에서 개신교로 돌아오는 개신교 목회자들에게까지 가셔서 이러한 개혁운동을 지속하였습니다. 되돌아보면, 박조준 목사님은 아무래도 이러한 일이 한국교회 안에 먼저 자리 잡고 전 세계교회를 향한 개혁운동을 새롭게 전개하려고, 2013년에 귀국하셨고, 이미 설립한 세계 지도력개발원 운영과 함께 국제독립교회연합회란 새로운 기관을 설립하여 교회 개혁운동을 한국교회 안에서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박조준 목사의 국제독립교회연합회란 기관의 설립이 결국 또 하나의 교파를 만든 것이 아닌가? 란 의문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저는 이러한 오해 때문에 평전을 준비하면서, 직접 박 목사님께 그 기관 설립 목적을 재차 확인해 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박 목사님의 대답은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즉 이 WAIC는 또 다른 교단이나 교파의 설립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독립 정신으로 주님의 일을 협의하는 기관이며, 또한 한국교회가 바로 서게 하기 위한 “교회개혁의 운동체”의 설립임을 밝혀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개혁 정신에 일치하는 분들과는 언제든지 연대하여 이 운동을 지속하려는 것이 설립의 근본 의도임도 일러주었습니다. 그리고 어디까지나 교회들의 친교와 협력을 통해 초대교회 모습을 회복하려는 운동임도 말씀하셨습니다. 나아가 그간 지나친 경쟁이 보여준 기존 교단과 교파 이기주의를 극복하고, 선교적 사명을 온전히 수행하기 위해 모든 역량을 실현하려는 것이 그 목적임도 분명히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역사적인 프로테스탄트 개혁 정신이 참으로 퇴색해진 한국교회 현실을 직시할 때, WAIC는 종교개혁 정신의 계승이 분명하며, 그것이 WAIC의 정체성임도 확인하였습니다. 그런 뜻에서 WAIC는 기존 교단이나 교파에 대하여 언제나 개방적이며 열린 자세로 연합체와 협의기구의 역할을 잘 감당하며, 동시에 한국교회를 바로 세우는 일에 크게 기여할 개혁 운동체임을 저는 확인하며 기대하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복음의 동역자 여러분, 이제 저는 박조준 목사님의 이러한 개혁 정신이 잘 계승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한 사람으로서, 역시 그분의 개혁 정신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개혁의 근본 실체를 더 밝히면서 설교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눅17:10절에 기록된 주님 말씀입니다. 이 내용은 우리 모두 잘 아시는 대로, 참된 종이 지녀야 할 올바른 신앙 태도를 요구하신 주님의 말씀입니다. 특히 이 말씀은 하나님의 종으로 부여된 목사의 사명을 망각하고, 그것을 목사의 성공과 공로와 대접과 사회적 신분 상승의 도구로 남용하며 왜곡하여, 종이 아니라, 오히려 주인으로 행세하려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주님의 말씀이 분명합니다. 즉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찌니라.”고 한 말씀입니다. 정말 아멘입니다. 되돌아보면, 박조준 목사의 개혁 정신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그 개혁의 근본 실체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저는 박 목사님의 평전을 준비하면서, 자신을 통하여 이룬 업적에 대하여 자랑하거나, 자신의 공로를 내세우는 모습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분은 “나는 무익한 종이라 마땅히 해야 할을 한 것뿐이라”는 그 정신을 보여주고 계신 그 모습이 저를 크게 감동케 하였습니다. 물론 그분이 개혁을 말할 때는 여러 가지 성경의 진리에서 어긋나 있는 한국교회의 왜곡된 모습을 바르게 고치는 것을 뜻한 것이었지만, 실제로 그분이 말씀하시는 개혁의 본질적인 실체는 어디까지나, 목사는 하나님의 부름받은 종이라는 강한 자의식에서 출발해야 하는 그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어디서 확인했느냐고 그 증거를 물으신다면, 그것은 박 목사님이 남긴 모든 문서와 강연의 자료들과 많은 기독 언론지 등에서 고백한 내용들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특히 지도력개발원에서 목회자들의 본분과 사명을 일깨운 목회 나눔과 목회 레슨 등에서 행한 모든 강연 내용에서 또한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목사는 하나님의 일을 맡은 종의 신분이라는 사실과 그것은 군림이 아니라 섬김이라는 사실을 일깨우는 것들에서이며, 또한 목사는 종으로서의 책무를 겸손하게 감당해야 한다는 교훈에서였습니다. 이러한 종의 신분과 책임을 일깨우는 그 강연 내용의 한복판에는 물질적인 대가를 요구하거나, 자기 공로를 주장하라는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으며, 그러한 것을 요구한다면, 그는 복음과 종의 참된 정신을 왜곡하는 일이며, 자신을 망하게 하는 일일 뿐 아니라, 한국교회를 망하게 하는 일임을 박 목사님은 온통 깨우쳐 주고 계셨습니다. 그러면 목사의 생존력에 필요한 것은 과연 어디서 구해야 할까요? 질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에 대한 박조준 목사님의 대답은 마6:33절의 말씀이 전부였습니다. 즉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는 주님 약속의 말씀이 전부였습니다. 존경하는 한국교회 지도자 여러분, 이것이 ”공중 나는 새를 보라,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고 일러주셨던, 그리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염려하지 말라고 일러주시던 예수님의 산상보훈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복음의 동역자 여러분, 저는 바로 이것이 오늘날도 우리와 우리의 다음 세대 지도자들이 계승해 가야 할 박조준 목사의 개혁 정신의 근본 실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참된 종의 신분으로 돌아가는 바로 그것입니다. 박조준 목사님은 오늘날 구순을 훨씬 넘기신 연세에도 불구하고 그것 하나를 외치시며, 종의 모범을 보이며, 종의 삶을 실천해 오신 한국교회 목양의 대 스승이 분명합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모두 이러한 박조준 목사의 개혁 정신을 잘 계승해 갈 때, 지금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는 한국교회와 우리 목사들은 우리 사회의 강한 불신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이며, 한국교회는 거기서부터 새로운 부흥과 성장의 시대를 다시금 맞게 되리라 확신합니다. 존경하는 한국교회 목양의 대 스승이신 박조준 목사님, 그리고 사모님, 참으로 부족한 저희에게 이러한 복음의 정신을 새로이 깨닫게 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하신 복음의 동역자 여러분, 이제 우리는 이러한 개혁 정신을 깨우쳐 주신 박조준 목사님께 진심으로 감사와 경의를 표할 뿐 아니라, 이제는 그분의 개혁 정신의 계승자들로서 이 혼란한 시대에도 박조준 목사의 개혁 정신의 계승 실천을 다시 한번 굳게 다짐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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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2026-06-23
  • [강대형 목사의 로마서 칼럼] ⑩ 믿음으로 은혜의 영역에 진입하라
    인생의 가장 중대한 합격점, 믿음의 통과례 로마서 5장은 구원받은 성도가 누릴 수 있는 어마어마한 축복의 보따리가 풀리는 장입니다. 하지만 이 풍성한 은혜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영적인 관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하나님 앞에 절망적인 죄인임을 깨닫고,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인 구원자로 받아들이는 단계입니다.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천국과 지옥이라는 기독교의 핵심 진리가 지식에 머물지 않고 마음으로 믿어질 때, 비로소 성도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구원의 혜택들을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은혜의 열쇠 하나님께서는 이 엄청난 구원을 얻는 유일한 방식으로 돈이나 고행, 혹은 특별한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을 정하셨습니다. 만약 구원에 대가가 필요했다면 가난한 자나 죽음을 앞두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이들에게 복음은 희망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린아이조차도 순수하게 응답할 수 있는 믿음이라는 방식을 통해 모든 인류에게 평등한 기회를 주셨습니다. 복음이라는 하나님의 편지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분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가장 큰 자비이자 선물입니다. 죄 사함과 하나님 자녀라는 새로운 신분 우리가 믿음을 고백하는 순간,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십니다. 이는 단순히 도덕적인 칭찬이 아니라 법적인 신분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이 우리의 모든 죄의 기록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우리를 하나님의 양자로 삼아주시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 된 관계가 아니라 아빠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친밀한 화평의 관계 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예배 중에 밀려오는 형언할 수 없는 평안과 위로는 우리가 이미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다는 강력한 증거입니다. 은혜의 영역으로 옮겨진 영적 거주지 성도의 믿음은 영적인 거주지를 세상에서 은혜의 영역으로 완전히 옮겨놓습니다. 타국에서 자국 대사관으로 진입하는 순간 그 나라 법의 보호를 받는 것처럼, 은혜의 영역에 들어온 자는 더 이상 죄와 사망의 권세에 매이지 않습니다. 비록 육신은 여전히 척박한 세상 속에서 환난을 겪을지라도,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과 성령의 도우심을 공급받습니다. 그렇기에 성도는 고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환난은 우리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를 연단하여 영원한 천국 소망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창세 전부터 계획된 영원한 사랑의 플랜 우리의 구원은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부터 계획하신 거대한 사랑의 플랜 안에서 이루어진 필연입니다. 이 생명의 말씀은 세상의 어떤 명문 대학이나 철학에서도 찾을 수 없는 영원한 소망입니다. 이제 이 은혜를 단순히 아는 것에 그치지 말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 속에서 날마다 기쁨을 누리며 승리하십시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변함없는 사랑으로 여러분을 붙들고 계십니다. 수지선한목자교회는? 수지선한목자교회(담임목사 강대형)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위치한 신앙 공동체로, ‘오직 복음’과 ‘성령의 임재’를 사역의 핵심 가치로 삼고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선포:관념적인 종교를 넘어 삶의 실제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십자가의 복음을 선포합니다. 죄 사함의 확신과 부활의 소망 안에서 성도들이 구원의 기쁨을 누리도록 돕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는 예배:성령의 강력한 운행하심을 구하며, 치유와 회복, 돌파가 일어나는 뜨거운 예배를 지향합니다. 특히 매주 금요일 ‘거룩한 불꽃 집회’를 통해 영적 갱신과 기도의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와 교육 사역: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자녀들이 말씀 위에 바로 설 수 있도록 체계적인 신앙 교육을 실시하며, 세상을 변화시킬 다니엘과 같은 영적 리더들을 양성하는 데 주력합니다. 치유와 상담 (HMSS):내적 치유와 상담 프로그램을 통해 현대인들의 마음의 상처를 보듬고, 복음 안에서 온전한 인격적 회복을 경험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사역을 펼치고 있습니다. 수지선한목자교회는 모든 성도가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내며, 지역사회와 열방을 향해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건강한 선교적 공동체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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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21
  •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칼럼] 하미자 목사의 ‘안식은 은혜’(창 2:1-3)
    안식은 하나님께서 창조 때부터 우리에게 주신 은혜입니다. 창조 때부터 약속하신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사람의 죄 때문입니다. 사람은 자기 삶의 주인이 되려는 죄악 때문에 안식을 잃어버렸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에 안식이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믿고 의식주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면 안식할 수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에 창조를 마치셨기 때문에 안식하실 수 있었습니다. 히브리어 안식(누아흐, 샤바트)은 어느 특정한 장소에 ‘정착하여 안주하다’, ‘하던 일을 마치고(끝내고) 쉬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안식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일곱째 날에 ‘창조사역을 마쳤다’라는 의미에서 그날을 안식일로 부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안식은 일주일 중 하루를 쉰다는 단순한 휴식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계획하신 일을 다 마치시고 쉬시는 완성의 뜻입니다. 안식은 창조의 완성과 끝이라는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구원의 목적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안식할 수 있을까요? 안식은 창조 때부터 하나님께서 모든 생명체에 값없이 주신 은혜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노력이나 계획에 의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을 잃어버리게 된 원인을 극복함으로써 가능합니다. 사람의 욕심에서 비롯된 하나님 말씀에 대한 불순종 때문에 창조의 안식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약 1:15) 예수께서는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1-3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안식을 얻으려면, 첫째, 내가 삶을 주관하는 의지를 버리고 모든 삶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둘째, 세상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셋째, 마귀를 대적할 하나님이 주시는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엡 6: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끝까지 안식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승천에 대한 믿음입니다. 참된 안식은 죽음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영원히 안식이 없습니다. 히브리서를 보면,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4: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들어가는도다”는 현재형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기서 안식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미래의 하나님 나라에서의 안식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참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곳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곳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지상에서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그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안식처는 시-공간적으로 어느 특정한 한 곳이 아닙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령님 안에 있을 때 안식할 수 있습니다. 안식은 쟁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식은 거저 받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안식은 모든 생명체를 위한 창조주 하나님의 창조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안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안식은 예수께서 사람의 새 생명을 위하여 죽음을 멸하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얻어진 결과로서 사망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이 은혜의 안식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졌고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 사람에게는 안식이 없습니다.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히 3: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순종의 죄로 말미암아 죽은 사람에게는 안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확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써 참 안식을 누리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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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15
  • [강대형 목사의 로마서 칼럼] ⑨ 십자가의 복음과 죄의 용서 : 인생의 가장 큰 복, 죄 사함의 은총
    1. 인생의 진정한 복은 어디에 있는가 현대인들은 건강, 재물, 명예를 복이라 부르며 그것을 얻기 위해 평생을 분투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생의 가장 본질적이고도 중대한 복을 다르게 정의합니다. 로마서 4장 7절과 8절은 “불법이 사함을 받고 죄가 가리어짐을 받는 사람들은 복이 있고 주께서 그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라고 선언합니다. 우리가 언젠가 영원한 심판주이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가장 큰 비극은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서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구원은 선택이 아닌, 죽음 이후의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 가장 시급한 과제입니다. 죄 사함을 받은 자만이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만세’를 부를 수 있습니다. 2. 죄의 실체: 관역을 벗어난 삶과 거룩한 권위에 대한 반역 죄를 단순히 도덕적인 실수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의 첫 번째 의미인 ‘하마르티아’는 ‘과녁을 빗나가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과 방향에서 이탈해 자기 마음대로 사는 것 자체가 죄의 본질입니다. 두 번째 의미인 ‘아노미아’는 하나님의 법과 권위에 대한 ‘반역’을 뜻합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는 “네가 원하는 대로 살라”고 속삭이며 우리를 유혹하지만, 그 뿌리에는 창조주를 밀어내고 스스로 왕이 되려는 무서운 교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죄의 실체를 직시하고 인정할 때 비로소 구원자의 손을 붙잡을 수 있습니다. 3. 양심의 고발과 하나님의 심판대 죄는 우리 내면에서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깁니다. 하나님이 주신 ‘양심’이라는 기능은 우리 안의 검사가 되어 우리가 행한 은밀한 죄들을 끊임없이 고발합니다. 요셉의 형들이 동생을 판 지 22년이 지난 후에도 위기 앞에서 과거의 죄를 떠올리며 괴로워했던 것처럼, 죄는 인간의 영혼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입니다. 더욱 두려운 사실은 우리의 모든 행위가 하나님의 얼굴빛 아래 낱낱이 기록(Recording)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인간의 수단과 노력으로는 이 영적인 장부에서 죄의 기록을 단 한 줄도 지울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이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4.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위대한 교환’ 하나님은 죄인을 심판하기보다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해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죄를 그냥 넘기실 수 없었기에, 죄를 전혀 모르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의 모든 추악한 죄를 대신 짊어지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정수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전가(Imputation)받으시고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공의가 충족되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하나님의 의’라는 새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은 우리 죄를 장부에서 삭제하시고(Delete), 예수의 보혈로 덮어(Cover)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고 선포하십니다. 5. 회복된 구원의 즐거움과 제자의 삶 죄 사함을 받은 자는 말할 수 없는 해방감과 기쁨을 누립니다. 사망의 권세에서 옮겨져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된 자는 삶의 태도가 달라집니다. 단순히 과거에 구원받았다는 지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자신의 세마포를 빠는 거룩한 싸움을 이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연약하여 다시 넘어질 때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요일 1:9)”이라는 약속을 붙잡고 다시 일어나야 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은 때로 좁은 길처럼 보이지만, 그 길 끝에는 영원한 생명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수지선한목자교회는? 수지선한목자교회(담임목사 강대형)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위치한 신앙 공동체로, ‘오직 복음’과 ‘성령의 임재’를 사역의 핵심 가치로 삼고 있습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 선포:관념적인 종교를 넘어 삶의 실제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십자가의 복음을 선포합니다. 죄 사함의 확신과 부활의 소망 안에서 성도들이 구원의 기쁨을 누리도록 돕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있는 예배: 성령의 강력한 운행하심을 구하며, 치유와 회복, 돌파가 일어나는 뜨거운 예배를 지향합니다. 특히 매주 금요일 ‘거룩한 불꽃 집회’를 통해 영적 갱신과 기도의 불을 지피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와 교육 사역: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 자녀들이 말씀 위에 바로 설 수 있도록 체계적인 신앙 교육을 실시하며, 세상을 변화시킬 다니엘과 같은 영적 리더들을 양성하는 데 주력합니다. 치유와 상담 (HMSS):내적 치유와 상담 프로그램을 통해 현대인들의 마음의 상처를 보듬고, 복음 안에서 온전한 인격적 회복을 경험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사역을 펼치고 있습니다. 수지선한목자교회는 모든 성도가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아내며, 지역사회와 열방을 향해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보내는 건강한 선교적 공동체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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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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