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준형 목사(영월 드림교회/ 국제독립교회연합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께서 위의 말씀을 하셨던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여러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랑을 강조한 새로운 계명을 예고하시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셨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인 줄 알 것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많은 사람은 예수님과 매우 가까운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이 없는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사랑이 결핍된 모습은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것이 자기 잘못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모습입니다. ‘전가’(轉嫁)란, 잘못이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씌우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처음으로 전가한 사람이 ‘가인’입니다. 가인은 평소에 선을 행하지 않고 사는 모습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다가,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자, 안색이 변하고, 하나님께 대들었으며, 경고하심에도 불구하고 결국 자기의 도리를 선하게 잘 감당하고 있는 아벨이 미운 나머지, 동생을 쳐 죽인 인물로 유명합니다.
우리는 가인을 남 보듯 하지만, 그런 기질은 곧잘 따라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옛날 가부장 중심적인 사회였을 때, 남편으로부터 ‘쿠사리’, 즉 구박을 받은 아내가 우울한 나머지, 속이 안 풀려 자식들을 향해 훈계를 핑계로 화풀이성 매를 드는 경우가 이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성경에서는 교육적인 차원에서의 매를 강조하기는 하지만, 매를 치는 그 마음에 자기의 화를 담아서 치는 게 문제입니다. 그런 매를 맞는 자녀는 어머니의 우울감과 화를 동시에 느끼게 되면서 덩달아 우울한 자녀가 되고 침울한 인생을 살게 됩니다.
이와 같은 모습을 교회로 가져와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도의 경우 본인이 하나님 앞에 잘못된 삶을 살거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지 못했을 경우 시험에 들게 되는데, 그에 대한 분풀이를 교회에 나와서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보통 교회 생활을 하면서 매사에 꼬투리를 잡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다니면서 누군가를 계속 비난하거나 누군가의 행동을 자기 기준에 맞춰서 타인을 정죄하는 모습이 그것입니다.
안타깝지만 그러한 모습 이면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와 삶을 받지 않았던 사실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기도를 왜 받지 않으셨을까요? 왜 그 입술에서 기도와 찬양이 나오지 않고 있을까요?
그것은 이미 마음 밭이 길 가요, 돌밭이요, 가시덤불과 같은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듣긴 하지만, 깨닫지 못하거나, 믿음의 뿌리가 부실하거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 앞에 넘어져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 제자들도 우리와 같이 주를 향한 열정과 믿음이 있으면서도 여전히 좌충우돌하거나, 주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믿음이 부족해 방황했던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온전한 믿음보다는 열정이 앞선 결과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다던 자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게 됩니다. 의심많은 도마는 “주님, 저희는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 길을 알 수 있겠습니까?”라고 따져 묻기도 합니다.
그런 도마를 향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여기에서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이라는 의미는,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예수님을 거치지 않고는’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미천하고 비참한 인생은 예수님을 거치지 않고는,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그 비참함에서 나올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이 주시는 기회가 있으며, 그 말씀을 통해 더욱 새롭게 될 수 있는 은혜의 길이 열려 있습니다. 자신의 누추함과 비참함을 버리고, 온전히 예수님과 동행하는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